광화문 뒤에 '고궁 박물관'
유석재기자
‘국립 고궁(古宮)박물관’.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 서남쪽, 광화문 바로 뒤편이다. 지난해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 있던 건물에 문을 여는 이 박물관은 4만점이 넘는 소장품이 모두 조선왕조 것으로 오는 10월 용산에서 재개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가히 한국 박물관의 쌍벽(雙璧)을 이룰 만하다. 조선 왕실 비장(?藏)의 보물들! 태조 고황제 금보(太祖高皇帝金寶)를 비롯한 여러 어보(御寶·임금의 도장)들과 좀처럼 일반이 접할 기회가 없던 태조의 어진(초상·보물 931호), 영조의 어진(보물 932호)도 공개된다.
고궁 박물관 15일 개관 흩어진 궁중보물 한자리에 총 4만점… 한번에 900점씩 전시 도대체 이 수많은 명품들은 그동안 다 어디에 숨어 있다 이제서야 나타난 것일까?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되면서 조선왕조는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왕실 재산을 일제 때는 이왕직(李王職)에서 관리했고 광복 후 ‘구 황실 재산 사무총국’이 업무를 이어받았다. 1961년 문화재관리국이 생겼지만, 미술품(국립중앙박물관)과 고문서(서울대·한국학중앙연구원)가 아닌 유물들은 그대로 경복궁·창덕궁·종묘 등에 방치됐고 일부는 유출되기도 했다. 스러진 왕조가 겪어야 했던 스산한 역사의 뒤안길이었다. 왕궁 유물 전시관이 처음 생긴 것은 1992년. 왕조 멸망 후 무려 82년만이다. 덕수궁 석조전 일부에 궁중유물전시관이 들어서면서 흩어진 유물들을 수습했으나 여전히 상당수의 유물들은 구중궁궐 곳곳에 남아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한자리에 모았다. 종묘에 있던 진설상과 제기, 창덕궁에 있는 고종황제의 자동차 다이믈러와 캐딜락 등도 이곳으로 오게 된다. 개관을 앞둔 전시실은 휘황하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 혼례 행렬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지나면 종묘 제례 때 쓰는 진설상(陳設床)과 제기(祭器)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과학의 진수를 모아놓은 곳에는 별자리를 돌판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地圖刻石·국보 228호)과 측우기, 앙부일구(해시계)가 관객을 반갑게 맞는다. 영왕비 대홍원삼(英王妃大紅圓衫)과 금봉잠(金鳳簪) 같은 의복·생활 유물과 도자기·가구들에 이르면 그 화려한 자태는 절정을 이룬다. “전시 공간이 2000평 조금 넘어서 한번에 900점밖에 공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특별전 형식으로 번갈아 전시할 겁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매번 다른 주제로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소재구(蘇在龜) 국립고궁박물관 추진기획단장의 표정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마침 이곳에 들른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민중미술 (평론) 하던 사람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서도… 사실 왕실 유물이야말로 그 시대 최고 수준의 예술품이고 문화의 절정이에요. 왕조 역사를 가진 나라라면 왕궁박물관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우리만 그동안 없었던 거지요.” 개관 후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02)3701-7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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