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지혜·´″°³оΟ♡/일상생활♡상식

한복

by 따그니(화려한백수) 2011. 2. 10.

한복



 
한국의 전통의상을
한복이라고 부른다. 한복은 우리 민족문화의 일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긴 고유한 의상이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옷을 말한다
[
한복의 특색]
여자 옷은 저고리와 치마가 상박하후 하여 옷차림이단정하고 아담하며 상의가
짧고 하의는 길어 단정하다 남자 옷은 밧짓부리의 선은 힘있는 남성적인 아름
다움을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흔히 백의민족이라 부른다 이는 예로부터 한국인은 흰색(白
을 좋아하고 좋은 인연을 가져온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한민족의 정서는 흰색으로 통한다고 볼수가 있다.우리옷은 직선과 곡선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한복은 선이 매우 아름다운게 특징이다 한복은 곡선적인 재단과 봉재로 형태를 입체화 시키는 서약복과는 달리 직선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평면구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를 입체적인 체형에 입히게 됨으로써 한복의 생명력을 부여받아 한국인의 몸에 맞는 한국 고유의 한복이 된다.

[
한복의 분류]
한복은 예복과 평상복의 구분이 있으며, 이에 여러 종류의 속옷이 따른다. 또한
남녀별, 계절별, 성인용과 어린이용으로 나뉘며 예전에는 신분에 따라 옷의 모양이나 색깔이 달랐다. 최근엔 전통한복을 계량하여 요즘 세대에 맞게 꾸민 계량한복이 인기를 끌고있다.


우리 옛조상들은 봄과 가을, 여름, 겨울에 따라 소재를 달리하여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왔다. 제철에 맞는 옷감 선택은 한복의 멋과 품위를 살리고, 전통소재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봄,여름,가을 옷]
봄·가을 소재로는 원래 무명을 비롯해서 국사, 갑사, 은조사, 항라 등의 다양한 옷감들이 있었으나, 요즘은 구하기조차 어려운 실정 이다. 가을은

자미사, 명주, 숙고사, 국사, 실크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 다. 특히 자미사로 옷을 지어 입으면 광택이나 문양, 걸을 때마다 스 치는 옷의 소리 등이 가을을 실감케 한다.

[
여름옷]
여름에는 모시,

삼베가 주소재로 시원한 소재가 역시 인기이다. 초여름에는 무명이나 다듬이한 모시로, 흰색이나 푸른색과 청색 염색 을 하는데, 자연소재가 갖고 있는 미색 그대로의 빛깔로 만들어 입어 도 멋스럽다. 또 명주하면 의례 더운 옷감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예전부터 생명주, 모시, 항라 등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했으며, 익히지 않은 명주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해 왔다. 한여름에는 베나 쟁친 모시(다듬이질 하지 않은 모시)로
적삼을 즐겨 입었고, 반저모시 로는 흰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

겨울옷]
겨울 옷 겨울에는 양단과 공단, 실크 등으로 치마저고리를 지어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지어 입으면 좋다. 겨울 한복은 물겹바느질을 하는 천으로 지어 입는 것이 제격인데 수직실, 명주, 위사수직, 자미사 등이 그나마 요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겨울용 옷감이다. 겨울 한복은 방한용으로, 외출시엔 두루마기나 반두루마기, 갖 저고리를 걸치고 가벼운 외출시에는 배자를 걸치면 추위를 막을 수 있다.


가을옷 소재 : 자미사


여름옷 소재 : 삼베


적삼
[
비녀와 뒤꽂이]
한복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로 가장 무난한 것이 올림머리,즉 업스타일들이다. 머리가 짧은 경우에도 달비라고 하는 부분 가발을 이용하기도 한다. 비녀는 뒤쪽에서 가지런히 모아 정리한 쪽머리를 가다듬고 고정하는 역활외에 장식적인 의미가 크다. 비녀의 재료로는 금,은,나무,백동,산호,옥등 매우 다양한데 과거에는 사용된 재료와 길이 등을 통하여 신분의 고하를 알수 있었다.비녀는 볼록하게 장식된 잠두 부분과 몸체로 나뉘며 잠두 부분의 장식이 비녀의 멋을 결정한다. 왕실 여인네들은 용이나 봉황을 , 일반여성들은 대나무나 매화등의 나무와 꽃이 조각된 비녀를 사용하였다. 비녀와 함께 쪽머리 위에 덧꽂는 헤어 엑세서리인 뒤꽂이 또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구이다.

[
노리개]
여인들은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내면적인 미를 중시하여 덕을 강조하여 왔지만 아름다움은 본능에 가까운 욕구이므로 외적인 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인들은 얼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매무새에 대한 아름다움도 추구하였는데 그러한 추세에 따라 발달하게 된 것이 장신구 이다.

     
칠보삼작노리개   비취단작노리개   비취단작노리개  
     
대삼작노리개   옥나빈리개   삼작노리개  
[
반지]
예나 지금이나 백년해로의 언약에 있어 가장중요시하는 상징물이 반지일 것이다. 반지는 부부의 언약과 여자의 정절을 의미하는 장신구로 기혼여성들은 항상 반지를 끼고 다녔다. 반지 또한 그 재료가 다양하여 금,은을 비롯하여 칠보,호박,옥,비취등이 주로 애용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의 은반지또는 옥,비취등의 반지를 , 겨울에는 금과 칠보등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반지를 즐겨 끼었다

[

떨잠과 첩지]
원앙 한쌍이 정답게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별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형상을 표현한 떨잠. '떨철반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떨잠은 왕비를 비롯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이다.'어여머리'나 '큰머리'를 할때 앞 가리마 중심과 양옆에 꽂았는데 용수철 끝에 별과 나비 같은 조각을 달아 마치 머리위에서 별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멋을 풍겼다. 첩지는쪽진머리 앞가리마 중심에 꽂는 장신구이다.

[

귀주머니]
우리가 흔히 복주머니라 알고 있는 귀주머니는 복을 비는 마음을 담고 있는 데서 유래 되었다. 비단,혹은 양단에 고운자수를 놓아 여인들의 주머니로 사용 되었다. 요즘에는 한복지와 같은 원단으로 마무리한 손에 드는 가방으로 귀주머니를 대신한다.

[

버선과 꽃신]
비단에 꽃자수가 놓여진 꽃신은 한복차림에서 빠뜨릴수 없는 것으로 버선과 함께 치마자락의 아름다운 선을 살려주는 소중한 아이템이다. 여자의 것은 '당혜' 남자의 것은 '태사혜'라고 불렀으며 한복의 색깔과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옷을 입을 때는 계절과 나이, 때와 장소에 맞는 옷색을 잘 선택하여 입어야 한다. 격식에 맞는 옷은 그 사람의 품위와 맵시를 아름답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배색이란 목적과 효과에 맞도록 두가지 이상의 색을 짜맞추는 것으로 배색과 보색의 조화는 질서와 통일을 의미한다. 특히 한복은 색상, 명도, 채도로 우아한 느낌, 지성적인 느낌, 개성적인 느낌 등을 표현할 수 있다. 한쪽 색상의 명도나 채도에 변화를 주거나 넓이를 변화시켜 신체적인 결함을 커버할 수 있다. 상의는 밝게 하의는 어둡게 하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며 그 반대는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반대색의 배색이 있고, 연두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 분홍 저고리에 자주 치마 등 같은 계열의 배색은 온화한 감을 주며 친근감, 융화감을 더하는 유사색사의 배색이 있고, 개화 이후 서구의 영향으로 입게 되었으며 동일색상의 명도차, 채도차에 의한 배색으로 정적이고 통일된 효과를 얻는 동일색상의 배색 등으로 크게 본다. 실례를 보면, 남색치마에는 옥색, 미색, 흰색, 다홍 저고리가 제 격이며 흑자주치마에는 분홍, 미색, 옥색, 노란색, 회색저고리가 안정 감을 준다. 다홍치마는 은은한 연두색이나 흰색 또는 남색 저고리가 어울 리고 북청색 치마에는 옥색, 연두색, 분홍 저고리가 친근감을 준다. 보라색 치마에는 같은 연보라색 저고리가, 물비취색 치마에는 흰색, 짙은 수박색 치마에는 흰색, 미색, 연두색 저고리가 좋다. 가지색 치마는 연보라색, 옥색, 노랑색 저고리가, 흰색 치마에는 연분홍 또는 옥색이나 미색 저고리가 좋다

옷감에 있어 옛날에는 예복에 사, 나, 능, 단 등의 비단류를 사용하였고, 평상복은 지체에 따라 달랐겠으나 면직류, 저마직류, 견직류, 모직류 등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쓰이고있었으며, 상복에는 마직류(삼베)와 면직류(광목,옥양목)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합성섬유 기타 각종 섬유가 쏟아져 나오 우리의 의료를 충족시키고 있다. 배색에 있어 신분관념이 엄격했던 옛날에는 나라에서 정한 금색이 있어 이를 함부로 사용해ㅐ서는 안되었는데, 여자의 경우 저고리는 노란 색 연두색 또는 옥색이 주가 되어 왔다. 옛문현에 의하면 노란색이란 송화색으로서 명도가 낮은 가라앉은 색이며, 연두색은 두록색으로 나와 있어 녹두색을 말한다. 옥색은 연옥색으로 깨끗하고 청아한 색이다.
치마는 홍색치마난 남색 치마가 주가 되어 왔는데, 홍색은 짙은 다홍색으로 매우 침착하고 가라않은 색조이며, 남색은 대단히 화려하고 청아한 색이다.
또 자색이 있었는데, 이색은 주로 치마색이나 회장색으로 사용되어 왔다. 자색은 젊은 사람은 꽂자주색을, 중년이 되면 짙은 자주색, 노년에 접어들면 검정자주색을 사용하여 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자기의 취미, 개성, 유행에 따라 여러 가지로 자우롭게 맞춰서 입는다. 이에 있어 유의할 점은 짙은 색으로 한옷은 다소 마르게 보이므로 뚱뚱한 사람에게는 좋으나 마른 사람에게는 더욱 말라 보이고 작아보인다는 점, 엷은 색은 옷의 외곽선이 흐리기 때문에 다소 풍신해 보이므로 마른 사람에게 어울린다는 점, 무늬는 키가 큰 사람이나 마른 사람에게는 가로줄무늬가 좋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우리 한복은 짙은 색 치마에 엷은 색 저고리이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옷이다.
 
전통적인 풍습엔 항상 우리 고유의 의상인 한복이 함께 한다. 오랜시간동안 전례되어온 풍습과 그에 맞는 한복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
혼례]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절차는 네가지 의례로 이루어진다. 즉결혼의사를 타진하여 혼례일을 정하는 납채, 예물을 보내는 납폐, 혼례식을 올리는 친영이 그것이다. 요즘 전통혼례식이라고 하 는 것은 친영만을 일컫는 것이고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댁의 부모 와 친척에게 첫인사를 올리는 절차인 현구고례는 아직도 폐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혼례식에서 신랑은 바지 저고리와 조끼,마고자 위에 두루마기 를 입고 단령을 입고 사모관대를 하고 목화(木靴)를 신는다. 관대는 단령의 겨드랑잉 고리가 있어 그 고리에 끼우는데 대체로 허리나 가 슴둘레보다 크기 때문에 고정이 되지 않는다. 앞가슴의 흉배 중앙에 관대가 위치하도록 한다. 신부는 청홍 스란치마와 노랑저고리위에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용잠에 앞댕기와 도투락댕기를 드린다. 홍치마의 앞부분을 한번 접음으로써 속에 입은 청치마의 스란단이 나 오도록 입는다. 원삼의 봉띠는 가슴을 지나 뒤에서 속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고 봉때는 옹매지 않고 속끈에 걸쳐서 한 번만 묶으며, 길게 늘인 끝 부 부분에도 같은 방법으로 한 번만 묶는다. 폐백 때의 옷인 활옷은 공주의 대례복이었던 것으로 혼례시에 는 일반인에게도 허용이 되었던 옷이다. 다홍색 바탕에 장수와 길복 의 뜻을 지닌 십장생 길상 문양이 옷 전체에 수놓아져 있는 화려한 옷으로 머리에 화관을 쓰고 앞댕기와 도투락 댕기를 드린다.

[
돌찬치]
초도일(初度日) 수일이라고도 한다. 돌이라는 말은 ‘주(周)’ ‘회(回)’등 한자의 뜻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돌잔치는 예로부터 행해져오는 경축행사로,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행하였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생후 1년 동안이 성장의 고비가 되었는데 그래서 1년을 넘긴 아이에게 돌은 재생의 기쁨을 맞는 날이었다. 돌을 맞은 아이에게 새 옷을 만들어 입히고, 쌀 ·떡 ·국수 ·과일 등 음식에 책 ·종이 ·붓 ·먹 ·활 ·화살(여자일 경우에는 활과 화살 대신 가위 ·자 ·바늘 등) 등을 곁들인 돌상을 차려 준다. 이 때에는 친척과 이웃이 모여 축하하며,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 행사로 아이에게 상 위의 물건을 아무 것이나 집게 하는 ‘돌잡히기’를 하는데, 돈이나 곡식을 집으면 부자가 되고, 책 ·먹 ·붓을 집으면 문인이 되어 벼슬하며, 국수나 실을 집으면 장수하고, 활 ·화살을 집으면 장군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돌날 아기의 옷은 머리에 복건(輹巾)을 씌우고 몸에 쾌자(快子)를 입히는 것이 상례였으나,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으며, 돌상 대신 서양 풍속을 따라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면서 돌을 축복하기도 한다.

[
회갑]
회갑연 즉, 수연(壽筵)때는 자녀들이 회갑을 맞은 부모께 헌수 를 하는데, 큰상을 차려 술잔을 올리면서 축수를 하는 의례이다. 이때 회갑을 맞는 남자(양반가문에서) 금관초복을 입었고 정해진 예복 은 없지만 여자는 소례복인 당의를 예복으로 입기도 했다. 당의는 조선시대 비, 빈, 상궁과 사대부의 여인들이 소례복으로 입었던 예복의 한가지로 치마와 함께 입는다. 당의는 겨드랑이 아래에서부터 양 옆이 트여있고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옷이다

[
장례]
수의에 대한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즉 삶이 끝난 시신에게 입히는 최종의 의복으로 죽음이라는 비통한 의미가 있는데도 도리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긍정적 입장은 인간의 죽음을 이승(현세)에 한정된 종말로 보지 않고 저승(내세)으로 가서 새로운 삶, 즉 영생이 시작되는 관문적 의미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혼례복과 같이 성장시키는 것은 내세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수의를 제작하는 날이 잔치를 치르듯 즐거울 수 있고 늘 꺼내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여기에 종속되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의를 혼례복으로 빌려 입는 것은 혼례자가 내세의 옷을 빌려 입음으로써 생명이 내세까지 연장된다고 믿는 상징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죽음을 인간의 종말로 보지 않는 내세적 욕구는 현세와 내세가 분화단절되지 않아서 왕래가 자유로운 것으로 보는 신화적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라 생각된다.

 
전통적인 풍습엔 항상 우리 고유의 의상인 한복이 함께 한다. 오랜시간동안 전례되어온 풍습과 그에 맞는 한복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
혼례]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절차는 네가지 의례로 이루어진다. 즉결혼의사를 타진하여 혼례일을 정하는 납채, 예물을 보내는 납폐, 혼례식을 올리는 친영이 그것이다. 요즘 전통혼례식이라고 하 는 것은 친영만을 일컫는 것이고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댁의 부모 와 친척에게 첫인사를 올리는 절차인 현구고례는 아직도 폐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혼례식에서 신랑은 바지 저고리와 조끼,마고자 위에 두루마기 를 입고 단령을 입고 사모관대를 하고 목화(木靴)를 신는다. 관대는 단령의 겨드랑잉 고리가 있어 그 고리에 끼우는데 대체로 허리나 가 슴둘레보다 크기 때문에 고정이 되지 않는다. 앞가슴의 흉배 중앙에 관대가 위치하도록 한다. 신부는 청홍 스란치마와 노랑저고리위에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용잠에 앞댕기와 도투락댕기를 드린다. 홍치마의 앞부분을 한번 접음으로써 속에 입은 청치마의 스란단이 나 오도록 입는다. 원삼의 봉띠는 가슴을 지나 뒤에서 속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고 봉때는 옹매지 않고 속끈에 걸쳐서 한 번만 묶으며, 길게 늘인 끝 부 부분에도 같은 방법으로 한 번만 묶는다. 폐백 때의 옷인 활옷은 공주의 대례복이었던 것으로 혼례시에 는 일반인에게도 허용이 되었던 옷이다. 다홍색 바탕에 장수와 길복 의 뜻을 지닌 십장생 길상 문양이 옷 전체에 수놓아져 있는 화려한 옷으로 머리에 화관을 쓰고 앞댕기와 도투락 댕기를 드린다.

[
돌찬치]
초도일(初度日) 수일이라고도 한다. 돌이라는 말은 ‘주(周)’ ‘회(回)’등 한자의 뜻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돌잔치는 예로부터 행해져오는 경축행사로,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행하였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생후 1년 동안이 성장의 고비가 되었는데 그래서 1년을 넘긴 아이에게 돌은 재생의 기쁨을 맞는 날이었다. 돌을 맞은 아이에게 새 옷을 만들어 입히고, 쌀 ·떡 ·국수 ·과일 등 음식에 책 ·종이 ·붓 ·먹 ·활 ·화살(여자일 경우에는 활과 화살 대신 가위 ·자 ·바늘 등) 등을 곁들인 돌상을 차려 준다. 이 때에는 친척과 이웃이 모여 축하하며,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 행사로 아이에게 상 위의 물건을 아무 것이나 집게 하는 ‘돌잡히기’를 하는데, 돈이나 곡식을 집으면 부자가 되고, 책 ·먹 ·붓을 집으면 문인이 되어 벼슬하며, 국수나 실을 집으면 장수하고, 활 ·화살을 집으면 장군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돌날 아기의 옷은 머리에 복건(輹巾)을 씌우고 몸에 쾌자(快子)를 입히는 것이 상례였으나,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으며, 돌상 대신 서양 풍속을 따라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면서 돌을 축복하기도 한다.

[
회갑]
회갑연 즉, 수연(壽筵)때는 자녀들이 회갑을 맞은 부모께 헌수 를 하는데, 큰상을 차려 술잔을 올리면서 축수를 하는 의례이다. 이때 회갑을 맞는 남자(양반가문에서) 금관초복을 입었고 정해진 예복 은 없지만 여자는 소례복인 당의를 예복으로 입기도 했다. 당의는 조선시대 비, 빈, 상궁과 사대부의 여인들이 소례복으로 입었던 예복의 한가지로 치마와 함께 입는다. 당의는 겨드랑이 아래에서부터 양 옆이 트여있고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옷이다

[
장례]
수의에 대한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즉 삶이 끝난 시신에게 입히는 최종의 의복으로 죽음이라는 비통한 의미가 있는데도 도리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긍정적 입장은 인간의 죽음을 이승(현세)에 한정된 종말로 보지 않고 저승(내세)으로 가서 새로운 삶, 즉 영생이 시작되는 관문적 의미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혼례복과 같이 성장시키는 것은 내세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수의를 제작하는 날이 잔치를 치르듯 즐거울 수 있고 늘 꺼내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여기에 종속되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의를 혼례복으로 빌려 입는 것은 혼례자가 내세의 옷을 빌려 입음으로써 생명이 내세까지 연장된다고 믿는 상징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죽음을 인간의 종말로 보지 않는 내세적 욕구는 현세와 내세가 분화단절되지 않아서 왕래가 자유로운 것으로 보는 신화적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라 생각된다.







 

300x250
반응형
SM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