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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국시대 이후의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 무덤의 특징

by 따그니(화려한백수) 2011. 9. 23.

 

삼국시대 이후의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 무덤의 특징

 

 

신석기시대: 토묘(동침신전앙와장 :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신체를 곧게 펴서 뉘어 놓음: 태양숭배와 내세사상 표시)

 

청동기시대: 고인돌(지석묘-족장무덤), 적석총(돌무지무덤-평민무덤), 석관묘

 

철기시대
1.고조선 : 토광묘 - 청동기와 철기의 과도기
2.부 여 : 순장
3.옥 저 : 골장제
4.삼 한 : 봉토가 커지기 시작하고 옹관묘도 성행
※ 고인돌 : 청동기에서 철기로 계승되지 못함

 

삼국시대
1.고구려: 횡혈식 석실고분(석실묘) - 부장품 없음, 고대국가의 공통된 무덤
전기 : 석총 - 벽화 없음 (예: 장군총-7층계단식)
후기 : 토총 - 벽화 있음
(예: 강서고분-사신도.도교영향, 쌍영총-기사도.팔각쌍주.두팔천장, 무용총, 각저총-서역영향)
2.백제
한성시대 - 초기 고구려 고분과 유사한 적석분(서울 석천동 고분)
웅진시대 - 횡혈식 석실고분, 전축분(중국 남조 영향, 무령왕릉)
사비시대 - 보다 세련된 횡혈식 석실 고분(능산리고분)
3.신라
초기 - 독무덤, 돌무지무덤, 돌방무덤
중기 - 돌무지덧널무덤(수혈식 적석 목곽분), 벽화 없음, 단장
부장품 출토(금관, 금귀걸이, 유리제품 등) (예: 155호 고분-천마총)

 

통일신라
① 불교식 장법인 화장 발달 (예: 문무왕 해중릉)
②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점차 횡혈식 석실고분으로 바뀜, 특히 무덤 주위에 호석으로 12지신상(도교 영향, 고려, 조선까지 계승됨)을 새기며 상석, 비석 등 석조물이 다채롭게 발달함

 

조선시대
▶왕릉상


조선시대의 묘제에 있어 왕실의묘는 능, 원, 묘로 구분된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왕의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 '묘'는 대군, 공주, 사친, 옹주, 후궁, 귀인등의 무덤으로

위계에 따라 그 명칭을 다르게 정한 것이다.

- 왕릉의종류

① 단릉 : 왕이나 왕비 어느 한쪽만을 매장한 형식.

② 쌍릉 : 왕과 왕비의 능을 같은 소구릉에 나란히 배치한 형식.

③ 동원이강릉 : 정자각 좌우로 두 개의 소구릉에 각기 1능씩 두는 형식.

④ 합장릉 : 부부을 같은 봉안에 합장하는 형식


▶ 조선시대 무덤양식


고려시대의 전통형식을 바탕으로 거기에 새로운 지도 이념인 유학사상으로 보완되어진다.

석곽묘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석시도 거대한 석관또는 석관형으로 변하였다.

화장묘가 사라지고 중국식 토광묘가 일반화하고 고려시대에 이어서 풍수지리사상이 더욱 보편화했다.

무덤에 함께묻는 물건인 부장물로는 백자등 자기가 주로 이용되었다. 겉모습은 초기의 원형과 장방형에서 중기 이후에는

거의 원형분으로 정형화하고 묘비가 일반화 하며 고관의 무덤 입구에는 죽은사람의 업적을 기록하는 신도비가 서게 되었다.

* 개항(다른나라와의 무역, 교류) 이후의 형식


이 시대에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매장법을 계승하여 원형토광묘가 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기,

읍 또는 마을에 화장장을 설치하여 화장을 권하기도 하였다. 산간 오지나 도서등 일부에서는 매우 드물게 추분이라 하여

사체를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어두었다가 육탈후에 매장하는 풍습도 있었다.


광복후 특히 6.25사변을 겪고 기독교가 성행하면서 무덤형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장방형의 낮은분구, 분구둘레에 장대형의 호석을

두르는등 원형분 일변도에서 모양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무덤의 내부는 여전히 토광의 전통법이 지켜지고 있다.


한편 불교의 영향과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변화로 무덤을 둑이나 담을쌓아 축조하지않고 화장하는 새로운 장법도 증가하고 있다.

 
출처 : 배움의장 쉼터 카페
글쓴이 : 조약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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