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에 짠·단맛 모르면 치매 의심
직장인 강영임 씨(35)는 얼마 전 함께 살고 있는 홀어머니(58ㆍ박정숙)와 외식을 하는 동안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엄마를 발견하고 놀랐다. 어머니는 딸 강씨에게 밑반찬으로 나온 나물이 달래무침이라고 설명까지 해줬는데 식사 끝에 "맛있게 먹은 나물이 뭐지?"라고 되묻는가 하면 시키지도 않은 김치가 왜 안 나오느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강씨는 외할머니가 60대 초반 치매를 앓아 10년 넘게 가족을 고생시키고 돌아가신 기억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녀는 모친을 모시고 병원을 찾아 검사한 결과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지향 서울시 서남병원 신경과 과장은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해 일상생활에 장애가 생길 때는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고령화로 치매환자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치매 악화 속도를 늦출 수 있고 일정 부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535만7000명 중 치매환자는 46만9000여 명으로 65세 이상 노인 11.5명 중 1명이 치매환자로 집계됐다. 고령화로 치매노인은 더욱 빠르게 늘어 올해 49만5000명에서 2020년 75만명, 2030년 113만5000명, 2050년 212만7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 알츠하이머 치매 71%…발병 원인은 나이가 들면 주름이 생기듯이 우리 뇌도 함께 늙어간다. 치매는 뇌 노화에 따른 뇌세포 파괴로 기억력이 떨어지고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치매의 71%는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급격히 죽게 되는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이다. 그 다음은 고혈압, 심장병,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 등이 발병 원인인 혈관성 치매가 24%를 차지한다. 뇌종양과 뇌손상, 영양결핍에 따른 치매는 약 5%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병은 1906년 노인성 치매를 처음 기술한 독일 신경병리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뇌손상과 영양결핍에 의한 치매는 원인을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원상 회복이 가능하고 혈관성 치매 역시 적절하게 치료하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도 더욱 심한 상태로 악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소영 아주대병원 신경과학교실 교수는 "치매는 65세가 지나면 5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며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흡연 등과 같은 뇌졸중 위험인자를 피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노화로 뇌세포가 파괴돼 뇌 안의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 특히 기억의 저장과 관련된 물질이 붕괴되어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병 원인은 신경 전달에 필요한 APP단백질이 변형돼 베타아밀로이드(Beta Amyloid) 또는 에이베타라는 독성 단백질로 변이되고 이것들이 뇌로 들어가 해마와 전두엽 세포를 죽인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의학계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혈액에서 뇌 속으로 진입하는 것을 매개하는 'RAGE 수용체'를 차단해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뇌 속에 침착하지 못하게 하면 알츠하이머 치매를 근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치매도 다른 질환처럼 전조 증상 있어 "어머, 왜 전화기가 냉장고에 있지?" "현관문 비밀번호가 뭐였지?" "휴대폰을 어디다 뒀더라." 치매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전조 증상을 보인다. 따라서 부모님의 평소 행동이나 말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치매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치매를 알리는 경고 중 첫 번째는 기억 장애다. 대화 도중에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묻는 증상이다. 치매가 진행 중인 환자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본인이 질문한 사실을 잊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평소에 익숙하게 사용했던 세탁기 전화기 가스레인지 등의 사용법을 모르며 짠맛 단맛 등 음식의 맛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평소 음식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반찬이 너무 달거나 짤 때는 치매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추론적 사고나 판단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계산 자체와 그것이 무엇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인지 완전히 잊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방금 전에 했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금방 가지고 있던 물건을 엉뚱한 자리에 두고 어디다 두었는지 못 찾는다. 전화기를 냉장고에, 손목시계를 반찬통에 두는 행동인데 다시 그 물건을 놔둔 장소에서 그 물건을 찾아도 본인이 그곳에 놔뒀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초로에 해당하는 50대는 뭔가를 자주 잊어버리면 혹시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지 불안해한다. 그러나 치매와 건망증, 기억장애는 다르다.
채승희 세란병원 신경과 과장은 "치매는 크게 기억장애, 언어장애, 방향 감각 상실, 계산력 저하, 성격ㆍ감정 변화 증상을 보이게 된다"며 "명심할 것은 이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나지는 않으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기억력이 좋은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망증'은 의학적 증상이 아니며 뇌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려 무의식적으로 수행한 일이 뇌에 저장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건강한 상태다.
이에 반해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만큼 심하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기억장애(amnesia)'라고 한다.
건망증과 기억장애의 감별 진단은 '신경인지검사'를 통해 나이와 학력을 고려한 평가 기준에서 기억력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 진단한다. 신경인지검사상에서 기억장애가 있을 때는 뇌의 변화가 동반돼 있는 예가 많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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